어째서 심리학은 과학인가?
모든 과학에 기저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오류를 범하거나 그 오류에 빠지지 않으면서 탐구 이해하려는 열정이다. 어떤 물음(예컨대, "죽음 후에도 삶이 존재하는가?")은 과학을 넘어서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러한 물음에 답하려면 논리의 비약이 없을 수 없다. 다른 많은 이 ("어떤 사람은 초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의 경우도 백문불여일견이다. 사실이 증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합리적이거나 황당무계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현명한 판단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 아이디어는 작동하는가? 검증하였을 때 그 예측을 지지하는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때로는 엄격한 검증을 받아서 지지받기도 한다. 1700년대에 과학자들은 유성이 외계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에 코웃음을 쳤었다. 두 명의 예일대 과학자가 관례에서 벗어나는 주장을 과감하게 내놓자, 토머스 제퍼슨은 야유 섞인 목소리로, "여러분! 돌멩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믿느니 차라리 두 양키 교수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겠소." 라고 맞받아쳤다. 때때로 과학 탐구는 야유를 칭찬으로 바꾸어놓는다.
과학은 대부분의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영구운동 기계(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더라도 영구히 일정한 비율로 작업을 계속하게 된다는 기계), 기적의 함 치료제, 과거로의 영혼 여행 등과 같이, 잊힌 주장으로 가득 찬 유형지로 추방해 버린다. 실제를 환상과 구분하고 사실을 난센스와 분리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태도, 즉 회의적이지만 냉소적이지 않으며, 개방적이지 만 잘 속아 넘어가지 않는 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디어들이 경쟁을 벌일 때는 신중한 검증만이 어느 아이디어가 사실과 가장 부합하는지를 밝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예기치 못한 재앙을 예측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전기충격요법은 심각한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치료법인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주장들의 검증은 심리과학자가 첫 번째 질문에는 '아니오'라는 답을, 두 번째 질문에는 '예'라는 답을 하도록 이끌어왔다.
과학적 태도들 실행에 옮기는 데는 호기심과 회의적 태도뿐만 아니라 겸손함, 즉 자신이 오류에 취약하다는 사실의 자각 그리고 놀라운 결과와 새로운 조망에 대한 개방성이 요구된다(Leary et al, 2017). 중요한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가 아니라 던지는 물음과 검증이 밝혀내는 진리이다. 만일 사람이나 동물이 어떤 아이디어가 예측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디어는 엉터리다. 초기 심리학의 좌우명 중 하나였던 '쥐는 항상 옳다'에 들어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겸손한 태도이다.
겸손함은 유익하고 현실적인 학문적 신뢰감을 예측해준다(Erlandsson et al, 2018). 9개 국가를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서 40,000명의 10대에게 16개의 수학 개념 중에서 어느 개념을 잘 알고 있는지를 물었는데, 그중에는 '진정 수', '주관적 적도와', '선언 소수'라는 세 가지 엉터리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수학 개념을 알고 있다고 으스대며 주장한 10대는 대부분 특권층의 남학생이었다(Jerri et al, 2019).
명심할 사항 :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아량과 지적 겸손함을 가능하게 해준다.
심리과학의 탄생
심리학의 초기 발전에서 중요한 이정표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인간답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주변 세상에 관하여 호기심을 갖는 것이다. 기원전 300년경에 그리스 박물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습과 기억, 동기와 정서, 지각과 성격에 관한 이론을 구축하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의 몇몇 엉성한 추측이 우스워 낄낄대기도 한다. 예컨대, 식사하면 졸린 까닭은 성격의 발원지인 심장 주변에 가스와 열기가 축적되기 때문이라는 제안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올바른 물음을 던졌다는 점에서 그의 공헌을 인정해야만 한다.
심리학 최초의 실험실
사고에 관한 철학자들의 생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1879년 12월 어느 날 독일 라이프치히대학교에 있는 어느 건물 3층의 작은 공간에서 심리학이 출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곳에 서는 근엄한 중년의 교수인 빌헬름 분트가 실험 장치를 개발하는 것을 두 젊은이가 돕고 있었다. 그 장치는 공이 플랫폼을 치는 것을 듣는 시점과 전신기의 버튼을 누르는 시점 간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었다(Hunt, 1993). 흥미롭게도 소리가 발생하면 바로 버튼을 누르도록 요구하였을 때, 사람들은 대략 0.1초 이내에 반응하였다.
그리고 소리의 지각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면 바로 누르도록 요구하였을 때는 대략 0.2초 정도 걸렸다. (자신의 자격을 깨닫는 것이 조금 더 오래 걸린다) 분트는 '마음의 원자', 즉 가장 빠르고 가장 단순한 심적 과정을 측정하고자 시도하고 있었다. 분트와 심리학 최초의 대학원생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초기 심리학파
오래지 않아서 새로운 심리과학은 선구자적인 학자들이 주도하는 여러 가지 상의한 학파로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초기의 두 파는 구조주의(structuralism)와 기능주의(functionalism)이었다.
구조주의 화학자가 화학 성분을 분류하는 주기율표를 개발해냈듯이, 심리학자인 에드워드 브래드퍼드 키치너는 마음 구조의 요소를 분류하고 이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반성적인 내성(내면을 들여다보기)을 하도록 요구하면서, 예컨대 장미를 보거나, 메트로놈 소리를 듣거나, 향기를 맡거나, 어떤 맛을 볼 때 자기 경험 요소를 보고하도록 훈련 시켰다. 이들의 즉각적인 감각, 심상, 느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서로 어떻게 관련되었을까? 불행하게도 내성이라는 구조주의의 기법은 다분히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내성은 똑똑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요구하였으며, 그 결과는 사람마다, 그리고 경험할 때마다 달랐다. 내성법이 시들해지자 구조주의도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단순 요소들을 가지고 마음의 구조를 구성해보고자 시도하는 것은 조립하지 않은 부품들을 살펴봄으로써 자동차를 이해하고 자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었다.
기능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내적 사고와 감정의 진화된 기능을 살펴봄으로써 단순히 그 사고와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넘어서고자 시도하였다. 냄새 맡기는 코가 하는 일이며, 생각하기는 두뇌가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코와 뇌가 그러한 기능을 갖는 것인가? 진화론 주장자인 찰스 다윈의 영향을 받은 제임스는 냄새 맡기와 마찬가지로 사고가 발달한 까닭은 그것이 적응적이기 때문이라고 가정하였다. 즉 사고가 조상의 생존에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의식은 한 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즉 의식은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에 적응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해준다. 제임스는 마음의 적응기능을 탐구하기 위하여 실질적인 정서, 기억, 의지력, 습관, 그리고 매 순간 의식의 흐름을 탐구하였다.
제임스의 뛰어난 글솜씨는 출판업자 헨리 홀트가 새로운 심리과학 교과서 집필 계약을 제안하게 했다. 제임스는 동의하였으며, 집필을 마무리하는 데 2년이 걸릴 것이라는 양해하에 1878년에 작업을 시작하였다. 교과서 작업은 예상치 않게 자질구레한 일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실제로 완성하는 데 12년의 세월이 걸렸다. (우리가 놀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한 세기도 넘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저서 심리학 원리(Princples of Pyehology) 탐독하며 제임스가 탁월하고도 우아하게 고급 교양인들에게 심리학을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